2014년 6월 12일 목요일

결코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들의 표정은 확연히 바뀌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 회당과 동산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흡족해하던 그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관정으로 몰려든 그들은 분노와 증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저자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못 박게 하소서!”
군중은 소리 질렀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죄를 물었다. 유대인들은 “행악자”라고 답했다.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빌라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미뤘다. 유대인들이 답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빌라도는 관정에 모인 유대인들에게서 살기를 느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여 달라고 외치는 군중의 아우성은 이성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공포였다. 예수님을 해하지 않는다면 그 살기가 빌라도를 덮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강력히 부정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여호와가 아니었다.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에 불과했다. 4천 년 동안 이적과 기사를 보며 여호와를 신앙해온 관성으로 예수님을 밀어냈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까. 그들은 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지 못했을까.


‘왜’에 대한 답변은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 라는 질문에서 되짚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까, 라는 질문으로 연결되고, 유대인들의 신앙을 이끌었던 대제사장들이 ‘어떻게’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했을까,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대제사장들은 ‘어떻게’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아니 증오하도록 만들었을까.


하나님과 성경을 권력과 명예의 수단으로 삼고 있던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의 등장은 위기였다. 메시아를 바라는 유대인의 열망이, 그 신앙의 힘이 대제사장의 지위를 공고하게 만드는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열망의 실체가 등장하면서 대제사장들의 입지는 불안해졌다. 예수님이 실제 하나님이신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그 ‘신앙’이 두려웠다. 대제사장들이 살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어야 했다.


대제사장들의 힘은 성경에서 나왔지만 성경을 근거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님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었다. 
대제사장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매수한 배신자를 이용해 예수님을 결박하고, 거짓 증인과 거짓 증거를 동원해 군중을 선동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했다. 침을 뱉고 희롱했다. 뺨을 때리며 증오했다. 그리고 증오한 군중을 이끌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요구했다.


관정에서 증오의 노예가 되어 예수님의 죽음을 외쳤던 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았다. 그들은 승리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생명의 실체이신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죽을 수 없다. 예수님은 위대한 부활을 이루셨고, 대속의 역사를 통해 인류에게 위대한 ‘생명’을 허락하셨다. 성경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그로써 예언을 이루셨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은 대중을 결집하고 증오의 힘을 폭발시켰지만 하나님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었다.


2천 년이 지났다. 2천 년 동안 예수님을 신앙해온 관성으로 기독교인들이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부정하고 있다. 그 모습은 2천 년 전과 놀랍도록 똑같다. 하지만 2천 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교회는 거짓과 증오에 무너지지 않는다. 2천 년이 지났지만 역사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결코 하나님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댓글 1개:

  1. 하나님의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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