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31일 일요일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


벌써 8월도 다 지나갔네요...
여름휴가로 살짝 일상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시작했던 8월이었는데..
또다시 일상생활에 지쳐 8월을 마무리 하고 있네요..ㅜㅜ
9월을 시작하기 전 지친 마음을 잠시 맑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2014년 8월 28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의 손길

한 마을에 큰 홍수가 났다. 며칠동안 폭우가 쏟아지자 집들마저 물에 잠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지붕 위로 올라가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중 한 남자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를 살려주시옵소서. 저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그때 이웃사람이 통나무를 붙들고 물에 둥둥 떠있었다.
“어서 이 통나무를 잡고 같이 구조대가 올때까지 기다립시다.”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구해주러 오실 것입니다. 옆집에 저 사람부터 구해주십시요.”


그리고 그 남자는 또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때 보트를 탄 구조대가 나타났다.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너무 위험합니다. 어서 보트를 타십시요.”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것입니다. 저는 괜찮으니 우선 다른 사람부터 구해주십시요.”


보트 구조대는 결국 뒷집 사람을 태우고 멀어져갔다. 그때는 이미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앉아 있을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남자는 서서 하늘을 보며 또다시 기도했다.
"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 주를 믿사옵나이다."


때마침 남자의 머리 위로 밧줄이 내려왔다. 구조헬기였다. 구조대는 어서 밧줄을 잡고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남자가 손을 내저으면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을 먼저 구하십시요.”
헬기마저 떠난 동네에 계속해서 비는 퍼부었고, 결국 남자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간 남자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늘어놓았다.
“하나님, 왜 저를 구원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기다렸는데 저는 이렇게 죽었단 말입니다.”


“나는 너에게 통나무도 보냈고, 보트도 보냈고, 헬기도 보내었다. 하지만 내가 내민 손길을 잡지 않은 건 네가 아니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사야 55:6)

-출처 : 패스티브닷컴


지금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손길을 내미시고 계실까요?


 만물을 통해 증거하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
가까이 계실 때...그 음성을 듣고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2014년 8월 25일 월요일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면?[하나님의교회]

두 신사가 항공모함에 올라탔습니다. 그중 한 신사가 선장 곁에 있는 아이를 보고 선장에게 물었습니다.
“저 아이가 당신의 아들입니까?”
“예. 제 아들입니다.”
선장은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그의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후, 다른 신사가 선상에서 혼자 놀고 있는 선장의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이 배의 선장님이 너의 아버지시냐?"
"아니요. 저의 아버지는 선장이 아닌데요."
선장은 옆에 있던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아이는 선장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선장과 아이는 무슨 관계일까요? 선장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거센 파도에 맞서 큰 배를 운항하는 선장은 남자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데 있어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 한 분뿐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의 위험성은 진실을 왜곡돼 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출처 : 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는 왜 어머니하나님을 믿나요?
하나님하면...당연 아버지하나님인데...세상에 어머니하나님이라니...
어머니하나님? 말이 되나요?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역으로 묻겠습니다.

왜 하나님은 어머니하나님이 될 수 없나요?
왜 하나님은 꼭 아버지하나님으로만 불러야 하나요?

그 고정관념을 깨면...
하나님의교회에서 믿는 어머니하나님이 보이실 것입니다.



2014년 8월 21일 목요일

영혼의 힐링, 어머니하나님-하나님의교회

마음의 힐링, 엄마

부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부를수록 그리운 이름. 우리는 그분을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 찾아 삼만 리'는 1976년 일본에서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가 19세기 후반에 발표한 단편 동화 <아페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라는 작품을 각색하여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된 명작이다.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약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아홉 살 소년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떠난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주인공 마르코에게 가장 큰 존재였던 엄마와의 소식이 끊기자, 마르코는 스스로 엄마를 찾아 머나먼 여정에 오른다. 힘겨운 여정에 오르는 소년 마르코의 모습에 애절한 주제가가 더해져 안타까움과 감동을 더했다. 특히 엄마와 마르코가 재회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그림출처 :만화 <엄마찾아 삼만리>

어떻게 보면 케케묵은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지금 보아도 감동적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엄마'라는 시대를 초월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필요한 사람은 마르코뿐만이 아니다. 엄마에게서 태어난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안식처, 엄마를 찾는다.

한편 영국문화협회에서 세계 102개국, 4만 명을 대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조사했다. 결과는 'Mother(어머니)'였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따뜻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정서인 것이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우리 영혼에게도 어머니가 존재한다. 어머니와 우리와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하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다 그 품을 떠나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처지가 되었지만, 우리는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로부터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을 받은 존재들이었다(이사야 50:1, 이사야 49:15). 그런 우리들에게, 진실한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이 세상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온갖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괴로움을 하소연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져가는 이유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이사야 66:13)

요즘 힐링 열풍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힘든 세상살이에 지친 내 영혼에게 편안한 안식과 위로를 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힐링의 효과가 일시적인 위로는 될지언정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진정한 힐링은 내 마음의 안식처이자, 내 마음의 고향이자, 나를 지으신 하늘 어머니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다. 세상에 힐링 열풍이 부는 것도 어쩌면 우리 영혼이 하늘에서 받은 하늘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갈구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자,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께서 당신을 찾아 먼 길을 달려오셨다. 부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어머니를 찾아 당신의 영혼을 위로하고,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엄마 찾아 삼만 리'의 여정에 '행복'이라는 마침표를 찍길 바란다.
- 출처 : 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2014년 8월 17일 일요일

정말 하나님의 교회는 나쁜 곳일까? 좋은 곳일까?

훌륭한 사람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휼륭한 사람입니까?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휼륭하다고 평한다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훌륭한 사람에게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쁜 사람에게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 볼 수 없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은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자공이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훌륭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훌륭한 사람에게는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나쁜 사람에게는 나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18~19)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경의 가르침대로 안식일을 지키며 유월절을 지키고 있음에도  하나님의교회를 나쁘다고 말하며 훼방을 하기도 합니다.
과연...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교회가 정말 나빠서 그런 것일까요?
각종 사회봉사활동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선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교회입니다.



2014년 8월 15일 금요일

명량해전....그 승리의 이유..

대한민국의 영웅을 넘어 성웅이라 불리는 이순신. 23전 23승의 장수 이순신에게 명량해전은 특히나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왜군은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330척의 배를 가지고 조선 앞바다에 포진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게 남은 건 12척의 배뿐이었다.



누가 봐도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왕과 조정에서는 당장 바다를 버리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압박하고, 휘하에 있던 장수들마저 전의를 상실하고 출정 명령을 거둬달라고 한다. 한 척밖에 남지 않은 거북선은 불타버리고, 백성들은 두려워 떨고 있다. 바다를 지키지 못한다면 한양이 삽시간에 왜군에게 포위되는 국가존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순신은 “충이란 백성을 향해야 한다”며 백성이 건재한 조선을 꿈꿨다. 명량해전을 앞둔 그에게 가장 큰 걱정은 백성들에게 독버섯처럼 번져 있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적군에게도 있을 터. 아무리 많은 수의 왜군이라도 이순신과의 전투에서 번번이 패배한 왜군에게는 이순신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한산도대첩에서 크게 패했던 일본의 와키자카 야스하루 장군의 “상대는 이순신이다”라는 말은 그들에게도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순신은 백성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선택한 방법이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것이었다. 백성과 나라만 생각한 이순신의 충심과 뛰어난 전략으로 왜군을 완파하고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명량에서의 대승으로 조선은 일본에게 빼앗긴 해상권을 되찾고, 조선을 정복하겠다는 일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모두가 패배감에 사로잡혀 안 된다고 할 때 두려움을 떨쳐버리도록 힘을 준 건 이순신 한 사람의 몫이었다. 그도 힘든 싸움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의 목숨을 건 희생이 장수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조선을 구했다. 그는 이 기적적인 승리를 ‘천행(天幸): 하늘이 주신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 명량해전 당시 큰 피해를 본 왜군과 달리, 조선의 배는 단 한 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전사자 2명, 부상자도 2명에 불과했다고 전해진다. 세계 해전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투로, 그의 말대로 천행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명량해전 후 400년이 지난 지금, 백성을 향한 충심을 가진 한 사람의 희생, 그리고 그의 섭리 속에 이루어진 천행으로 생명을 얻은 자들이 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자들이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리시며 목숨을 걸고 세워주신 절기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천행’이다.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고결한 충심을 지니신 예수님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류는 죄를 사함받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5:17)


하지만 이 귀하디귀한 새 언약 유월절이 A.D. 325년 사단의 계략에 의해 폐지돼버리고 말았다. 영생의 축복이 약속된 새 언약 유월절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은커녕 다시금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되었다. 새 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새 언약 유월절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천행 중의 천행이다.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 유월절을 통해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주셨다. 이제 인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 있게 믿음의 싸움을 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명량해전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린 영화 ‘명량’에서, 겨우 12척의 배를 가진 조선 수군이 330척의 전함을 몰고 나타난 왜군과 맞서 싸우는 전투 신을 지켜보며 관객들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명량해전의 승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웅 이순신의 명확한 판단력과 위기를 극복하는 리더십, 살기등등했던 일본군이 참패하는 모습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과 사단의 영적 대쟁투의 승패는 이미 6천 년 전에 정해졌다. 무조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이기는 싸움이다. 이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여인의 남은 자손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승리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두려워 몸부림치며 패망하는 악한 무리들의 최후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14~15)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계시록 12:9~17)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10)


백성을 향한 충심과 목숨을 건 하나님의 희생으로 우리들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단과의 영적 대쟁투에서 이길 수 있는 말씀의 검을 손에 쥐어주셨다. 영적 대쟁투는 천행을 누리는,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다. 하나님의 희생으로 세워진 새 언약 유월절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늘 군대의 일원이 되어 사단과의 싸움에 용감하게 맞서는 승리자가 되기를 바란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알려주신 상상에너지

상상 에너지

어떤 일이든 오랫동안 하다 보면 무료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또 가끔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내 앞을 가로막아 낙담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면 처음 가졌던 열정을 잃어버리고 쉽게 지치게 되는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라고 합니다. 현재라는 시간을 넘어 장차 맞이할 미래의 행복을 마음껏 그려보는 것입니다.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에도 최고의 에너지가 되는 즐거운 상상이 있습니다.
때로 복음의 길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우리에게 약속된 아름다운 천국을 떠올려 보십시오.

머지 않아 펼쳐질 영화로운 하늘 세계의 영광을 상상한다면 지금은 크게 보이는 힘겨운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요.

유리 같이 맑은 정금 길을 즐겁게 거닐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생명강가에 달마다 맺히는 생명 나무의 실과를 먹으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색찬란한 천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우리들의 모습.....

아름다운 천국을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지금, 다시금 솟아나는 새로운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로마서 8장 17~18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게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출처 : 하나님의교회 watv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그 어떤 훼방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포기 하지 않은 이유!!

왜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 , 안식일을 포기 하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포기 하지 않을까요?
그 어떤 훼방이 있다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교회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이유


한 사냥꾼이 토끼 사냥에 나섰다.
사냥꾼은 토끼를 잡기 위해 수많은 사냥개를 풀었다. 사냥개들은 토끼를 쫓기 시작했다.
사냥개들 중 맨 처음으로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가 마구 짖어대며 토끼를 향해 쫓아갔다.
그러자 토끼를 보지 못한 다른 사냥개들도 덩달아 짖어대며 그 사냥개를 따라 달렸다.
얼마 후, 토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뒤따라갔던 개들은 하나 둘 달리기를 멈추었다.
어떤 개는 장애물이 나타나자 곧바로 쫓기를 포기하며 되돌아갔다.
그러나 유일하게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사냥개가 있었다. 맨 처음으로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였다.
잠시 후 그 사냥개는 목표물인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토끼를 잡은 사냥개와 도중에 포기했던 사냥개의 차이는 이것이었다.
직접 목표물을 보고 확인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6~17)

-출처 : 패스티브닷컴



바로 성경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유월절을 확인했고, 안식일을 확인했고, 
이 시대 구원자이신 재림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확인했고 
어머니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천국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교회를 훼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성경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천국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좋게 말하는 습관

좋게 말하는 습관


'낙서 금지', '쓰레기투기 금지', '촬영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 '주정차 금지'......

길거리나 사무실, 음식점처럼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장소에 가면 각종 금지 표시 또는 'CCTV 녹화중'이라는 경고문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 13km를 도보로 이동하며 외벽, 기둥, 건물 출입구 등을 조사했더니, 금지 경고 표시가 약 2천 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어른 걸음으로 아홉 걸음에 하나씩 있는 셈이지요. 이에 대해 한 상담심리 전문가는
"질서 유지와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지나칠 경우 구성원에게 심리적 억압으로 작용해 우울증이나 공허감 등 각종 정신병리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돼" "하지마" "두고 보자"와 같이 강압적인 말을 계속하면 서로의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아예 말문을 닫을 가능성도 높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 경고보다는 권유,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부드러운 표현으로 말하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겠습니다.

-출처 : 하나님의교회 watv 오늘의 묵상 중에서....


2014년 8월 9일 토요일

어리석은 자...하나님의교회는?



어느 날, 모스크바의 한 출판사에 수염이 텁수룩하고 볼품없는 모습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내 원고를 책으로 내주었으면 좋겠소.”

출판사 사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원고는 여기에 얼마든지 굴러다니고 있소. 설령 당신이 출판비용을 모두 부담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줄 수 없소.”

그러자 남자는 원고뭉치를 다시 품에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중이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썼는데요?”

남자의 의미심장한 말에 놀란 출판사 사장은 그제야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 남자는 대답했다.

“내 이름은 톨스토이입니다.”

그러자 출판사 사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톨스토이에게 사과하며 원고를 내주기를 간청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0~12)


-출처 :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8일 금요일

친(親)과 효(孝)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해가 지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애타는 마음으로 동구밖 나무 위에 올라서서 기다립니다.

멀리서 오는 아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아들을 기다리며 바라보는 (見) 어머니 모습.

이 형상을 본 따서 만들어진 한자가 바로 '어버이 친(親)' 입니다.



나무를 팔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과 선물을 사 오던 아들은 추운 날씨에 밖에 나와 자신을 기다리는 어머니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어머니 , 제 등에 업히세요."

아들(子)은 늙으신(老) 어머니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모습을 본 따서 만들어진 한자가 '효도 효(孝)' 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월간<엘로히스트>중에서

2014년 8월 7일 목요일

알고 있다는 착각!! 하나님의교회는 NO~~~!!

알고 있다는 착각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영역을 벗어나 자신의 사고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느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을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하는데,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했던 ‘0.1%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전국모의고사에서 전국석차 0.1% 안에 있는 800명의 학생들과 평범한 700명의 학생을 비교해 두 그룹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탐색해보는 내용으로, 연관성 없는 25개의 단어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테스트를 통해 메타인지력을 설명했다.


실험에서는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단어를 기억하기 전 자신이 몇 개의 단어를 기억할 수 있는지 먼저 예상토록 했다. 두 그룹의 결과는 흥미로웠다. 상위 0.1%의 학생들은 자신이 몇 개를 기억할 수 있는지 예상한 것과 실지로 자신이 기억한 결과가 서로 일치했지만 평범한 그룹의 학생들은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예상과 실지로 기억해낸 결과의 차이가 훨씬 컸다. 이것이 메타인지력의 차이다.


상위 0.1% 그룹에 있는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타인지력이 낮은 사람은 자신이 다 알지 못하면서도 무엇인가 다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있다. 이렇게 메타인지에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친근감’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족이 여행을 가다가 갑자기 자동차의 고장으로 대로변에 섰다고 하자. 남자는 무작정 자동차 앞으로 가서 보닛을 열어 들여다본다. 사실 보닛을 열어본다고 해서 남자는 무엇이 고장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항상 차와 친근하게 지내왔기에 남자는 고장의 원인을 밝힐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친근감’은 메타인지의 혼란을 초래하고 메타인지력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영적 메타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경은 안식일, 유월절 등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전하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다 알고 있다’며 ‘성경을 덮고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과연 저들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저들은 그저 오랜 세월 일요일에 예배를 보아왔고, 십자가를 숭배해왔고,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기념해왔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성경에는 없는, 사람이 만든 것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영적 메타인지가 낮아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을 늘 접하고 있다는 친근감 때문에 영적 메타인지의 혼란이 왔고 결국 자신들의 알고 모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린도전서 8:2)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사도행전 17:11)


자신이 다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면 결코 구원의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야 구원의 길이 어디인지 알게 될 것이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존재 이유!!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장 9~13절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그 곳을 떠나 세관 앞을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세금 징수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 마태를 보고 부르신다.

"나를 좇으라"

예수님의 한 마디에 마태가 주저없이 뒤따른다. 마태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자리에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한다. 죄인들이 예수님과 한 상에서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따져 묻는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저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답하신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유대인들은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상납하는 세리에 대해 좋게 여기지 않았다.
죄인이라면 모두에게 경멸의 대상일 터.
예수님께서는 남들이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이들과 기꺼이 한 상에서 음식을 나누셨다.
손가락질을 받게 될 줄 뻔히 아시면서도 그들 곁에 계셨던 이유는 오직 하나!.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고자 함이셨다.

점도 흠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수욕받으심은, 천시받는 죄인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과 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들이 받아야 할 고난을 대신 당하신 분,
그 분이 우리 곁에 계신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이시다.

-출처 : 하나님의교회 watv. <오늘의 묵상> 중에서....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고난과 손가락질을 받으셔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 모든 고난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시고,
오로지 이 자녀들의 구원만을 위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하나님의교회는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이 계심으로 행복합니다.

2014년 8월 1일 금요일

완벽의 함정

완벽의 함정

귀퉁이 한 조각을 찾기 위해
동그라미가 온종일 힘겹게 돌아다녔습니다.
한 조각만 찾으면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녁 무렵, 드디어
자신에게 꼭 맞는 한 조각을 찾았습니다.
"난 이제 완벽해!"
그러나 동그라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둥글기에 계속 굴러야만 했습니다.
개미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나무 그늘에서 쉴 수도 없고
꽃향기를 맡을 겨를도 없습니다.

완벽함, 그것에 목숨 걸지 마십시오.
너무 찬란한 태양은 아무도 쳐다보지 못합니다.
완벽함 속의 불행보다
부족함 속의 행복이 더 낫지 않을까요.

-출처 : [내 마음 들었다 놨다]


8월이네요....
8월은 완벽하기 위해 노력하고, 목숨 거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나의 모습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